안녕하세요, 티쿱스토어입니다:)
오늘은 지난번에 이어 당나라 이후의 중국차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.
<송나라>
(투차하는 모습)
송나라 시대의 차는 병차보다 그 크기가 작아진 단차(团茶)형태로 모습을 바꿨습니다. 그래서 더이상 큰 솥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, 자연스레 차를 우리는 방법도 바뀌었는데요, 단차를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든 후 찻잔에 물과 함께 섞어서 마시는 점차법(点茶法)이 송나라 시대의 새로운 방법입니다. 이 점차법은 훗날 일본의 말차 음차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. 송나라의 단차는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손이 많이 갔을뿐더러 그 맛과 향이 훌륭하여 그 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주로 공차(贡茶)로 황실에 바쳐졌습니다. 그리고 송나라 시대에는 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져가면서 차에 관한 시, 투차(斗茶-차 우리는 경기) 및 차관(茶馆)이 성행했습니다.
<명나라>
(주원장)
송나라 이후 이민족이 세운 원나라의 왕 또한 송나라 시대 단차의 매력에 푹빠졌습니다. 그러나 원나라가 멸망하고 새로 들어선 명나라의 주원장은 단차가 이민족 원나라가 좋아했던 차이며, 그 차를 만드는데 백성들이 수고스러운 것을 고려하여 과감하게 단차의 생산을 금지하게 됩니다. 하지만 주원장도 차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단차 형태의 차 대신 다른 형태의 차를 생산하게끔 합니다. 바로 이시기에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차의 형태 산차(散茶)가 탄생하게 됩니다. 차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차를 우리는 방법도
바뀌어 명나라 때부터는 포차법(泡茶法- 산차를 차호에 우리는
법)으로 차를 우리기 시작했습니다. 자사차호도 이 시기부터
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.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으로 마시는 찻잎의 형태와 차를 우리는 방법 모두 명나라때부터
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. 또한 명나라 이전까지는 녹차종류의 차만 존재했지만 명나라때부터 녹차뿐만
아니라 홍차, 청차(우롱차) 등 다양한 종류의 차가 생산되기 시작합니다. 그뿐만
아니라, 명나라의 정화라는 인물이 바닷길을 개척하면서 중국차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.
<그 이후>
(아편에 중독된 청나라 사람들)
청나라에도 명나라의 산차(잎차)로
우려마시는 포차법이 성행하였고, 그 전통이 계속 이어집니다. 그런데
영국과의 아편전쟁 및 중일전쟁 등으로 차의 생산이 잠시 중단되었는데, 다행히도 80~90년도부터 다시 그 생산이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.
지금까지 중국차의 역사와 발전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습니다.
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:)
오늘도 나를 위한 작은 배려, 차 한잔으로 힐링하세요~♡
(본 게시글의 사진 출처는 www.baidu.com 입니다.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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